안녕하세요, 님.
티끌만 한 안부를 건네러 왔어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 베란다에 둔 캠핑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지내고 있어요. 며칠 전, 방을 정리한 덕에 편안하게 책 읽을 공간이 생겼습니다. 사실 저는 정리와 거리가 먼 사람인데요. 고백하자면 근 몇 년간 방을 제대로 정리한 일이 없답니다. 정리랍시고 한 곳에 몰아 쌓아두기만 했지요. 그러다 언젠가 아무것이 아무렇게나 아무 곳에 있는 방을 보면서 제 머릿속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도 아무것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상태였거든요. 찬찬히 되짚어보니 머리가 어지러울 적에는 언제나 방도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가방 속이며, 노트에 적어둔 메모들까지요.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요. 혼란한 상태에서는 손대는 것마다 혼란해지니 말이에요. 방이 이렇게나 뒤죽박죽인 것은 제가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성정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 쓴 종이도 쉽게 버리지 못하거든요. 언젠가 들여다봐야 할 기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뭘 그렇게 붙잡아두고 싶었을까요?
재미있는 건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금세 방과 머릿속에 대한 사유는 끝이 납니다. 무엇도 정돈되지 않은 채로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요. 방 정리는 내일 해야지, 하고요. 그것은 언제나 내일의 할 일이었기 때문에 ‘방 정리’라는 마음의 숙제가 한쪽에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버리지 못해서 쌓아둔 종이가 공기를 탁하게 하고, 햇빛을 가리는 하얀색 커튼은 걷힐 줄을 모르고, 널브러진 가방이 뜨거운 방바닥에 데워졌다가 식었다가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미루던 숙제를 모른 체 하기 어려워집니다. 치워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서, 날마다 무겁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며칠 전 방을 정리했을 때, 이제야 밀린 숙제를 처리할 줄 몰랐습니다. 어떤 기회는 순식간에 다가오더군요. 엄마가 얻어온 화장대가요. 그걸 방에 들여놔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햇빛을 가리던 하얀색 커튼을 걷고, 베란다 문과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겨울 냄새와 시원한 공기가 밀려와요.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느낌입니다. 어쩐지 마음이 개운하고 선명해집니다. 보통은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분리하다가 가만히 앉아서 이 물건이 어쩌다 내게 왔는지 어림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사족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온몸으로 어지러운 머릿속을 헤집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나 봅니다. 켜켜이 묵혀둔 많은 것을 정리했어요.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마음 한구석에 있던 먼지도 털어냈습니다. 시작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저는 시작하는 일이 고된 사람이라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요즘에는 베란다에 둔 캠핑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지냅니다. 지금도 방에 들어갈 때면, 이따금 제 머릿속과 같다고 느껴져요. 지금은 아무렇게나 뒤엉킨 모습은 아니네요.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은 버리지 못한 종이도, 언젠가 들여다봐야 할 기록도 아닌 어떤 안정감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가 더 편하고 안전하다 여겼으니까요. 오래도록 모른 체 하던 일을 막상 마주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제 방이 정리해야 할 것들로 무거워지더라도, 창문을 열어 개운한 공기로 호흡하고 머릿속을 헤집고 싶어요. 그런 종류의 씩씩함을 얻었습니다. 별거 아니니까, 그냥 시작할 수 있는 굳센 기운을요.
내일은 미뤄둔 산책을 합니다.
프롬티끌, 밍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