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구를 사귀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어요. “너 혈액형이 뭐야?”와 “너는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니?” 두 가지 질문이에요. 그 당시에는 간편히 그 친구의 성격과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혈액형별 성격 유형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거든요. 질문을 들은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곧장 좋아하는 색과 자신들의 혈액형을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 보통 ‘너는?’ 하고 되물었죠. 그러면 저도 망설임 없이 나는 B형! 초록이 좋아! 라고 답했어요. 사실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처럼 망설임 없이 답하고 싶은 마음에 임의로 초록색을 골랐어요. 좋아하는 과일의 색이 초록색이었거든요. 신기하게도 초록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진짜로 초록이 좋아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점점 그 질문들이 시시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어요.
올해 일을 그만두고 갭이어를 가지며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어요. 작년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오고 다시 여름이 왔는데 올해는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다시 꽃이 지고, 나뭇잎이 풍성해지는 과정을 온전히 느끼며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초록색이 참 다채롭다는 것이에요. 그전에는 산, 나무, 풀, 숲의 색은 단지 하나의 ‘초록색’처럼 느껴졌는데 시간을 들여 주의 깊게 살펴보니 나무마다 식물마다 각각 다른 채도와 색감의 초록색을 갖고 있었어요. 연한 초록, 쨍한 초록, 어두운 초록, 칙칙한 초록이 뒤섞여 한데 모여있는 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다채로운 초록이 주변에 가득했다니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가지 더 알게 된 기분이었어요.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바라보듯 산을 보며 다채로운 초록을 하나씩 살펴보곤 해요. 그러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초록의 변화도 느껴져요. 4~5월의 초록은 은은하면서도 푸릇푸릇하고 생기가 느껴지는 초록이에요. 6~8월은 일반적인 ‘초록색’ 같은 쨍한 초록. 보기만 해도 생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초록이에요. 9~10월은 보면 볼수록 심오하고 빠져드는 깊은 초록. 마치 무언가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요. 어느새 초록을 감각하는 일은 저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좋아하는 색이 생기고 그 색을 감각하게 된다는 것은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일인 것 같아요. 어쩌면 시시하게 느껴졌던 좋아하는 색에 대한 질문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첫걸음이 되어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물어보려 해요.
님은 무슨 색을 좋아하시나요?
오늘은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색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