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앞에 바로 오는 버스가 딱 하나 있는데요, 바로 208번 입니다. 의정부 시내를 나가든,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든, 알바를 하든 집에 오려면 208번은 꼭 타야하는 필수 버스였어요. (물론 지금도 상황이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요) 때는 2016년 4월 초. 의정부 예술의 전당 전시장에서 알바를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었어요. 저희집은 거의 종착 지점이라 집에 도착할 때 즈음엔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어요. 문득 빈 옆자리를 보는데 버스 의자로 아직도 햇빛이 느껴지는 거예요.
'아, 해가 많이 길어졌구나'
깨달았죠. 하늘을 보고 깨달은게 아니라 버스 의자가 가지고 있는 햇빛으로 해가 길어진 걸 깨닫다니.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208번 버스 안에서의 그 찰나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해가 길어진 보니 이제 한창 봄이겠네. 곧 또 여름이 오겠다. 거의 매일 타는 버스 안에서의 빛과 색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니 너무 멋진 일이지 않나요? 정말 정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서 나와 내 주변이 함께 살아있다는 걸 느낄 때, 이 삶을 지속할 힘이 생김을 느낍니다.
그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담아 캔버스에 옮겨 보았어요. 밝진 않지만 버스 안에 여전히 들어있는 빛을 잘 담아내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 이 그림은 의정부 미술도서관 1층 전시장에서 보실 수 있는데요, 이 그림의 제목이 왜 '해가 많이 길어졌죠' 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프롬티끌을 구독하고 계시는 님에게 먼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요즘 또 마침. 해가 길어지고 있는 계절이더라고요. 훗날 또 이맘때 쯤이 되어 해가 길어짐을 실감할 때 님의 기억속에 제 이야기와 그림이 떠오른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