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서울의 서쪽 끝에 사는 친구가 의정부에 놀러 왔습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의정부에 놀러 온다고 하면 너무너무 반가운 마음이 드는 한편, 머릿속에는 경고음이 울립니다.
“비상이다...”
서울에서 의정부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어딜 데리고 가야 좋을까,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어떤 하루를 만들어 줘야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까… 의욕은 앞서는데 막상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어서 난감합니다. 누가 놀러 오기로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곳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카페, 도서관, 떡볶이 맛집, 경전철, 오래된 영화관 등등 손님의 취향에 맞춘 코스를 짜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좋아하는 곳’도 꼭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코스에 꼭 끼워 넣는 곳이 바로 중랑천, 부용천, 백석천, 회룡천을 따라 길고 넓게 나 있는 산책로입니다. 사실 산책로를 목적지로 삼는다기보단, 이동 경로에 걸칠 수 있게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여기에서 음악도서관까지 하천 길 따라서 이십 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데. 좀 걸을까?” 하면서요. 릴레이 하듯 흐르고 있는 네 개의 하천은 의정부를 가로지르며 각 동네와 이어져 있어서, 코스를 이어주는 ‘텔레포트’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해요.
지난 수요일은 마침 날이 좋았습니다. 내내 뿌옇게 껴 있었던 미세먼지가 걷히고, 맑고 시원한 색의 하늘이었습니다. 친구가 오는 날에 날씨가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의정부 시내에서 신곡동까지, 음악도서관에서 회룡역까지 부지런히도 걸었어요. 걸어가는 중에 너무 더워져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벤치에 앉아서 흐르는 물과, 새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요. 저에게 산책로는 너무 일상적이고, 단조롭기도 한 공간인데, 친구와 함께 걸으니 새로운 여행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걸으면서 순간 포착한 것들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즐거웠어요.
동시에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도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매일 보는 풍경들이 궁금하고, 어떤 공간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도 궁금해요. 친구가 데려가 주는 곳에선 분명 아주 일상적인 애정이 느껴질 것 같아요.
아마 앞으로도 의정부에 놀러 오는 친구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 줄지, 어떤 곳에 데려가면 좋을지를 생각하면서 난감해하고, 쩔쩔매기도 할 것입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때때로 정말 재미없어진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 도시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시간과 마음을 들여 우리 동네에 와준다면, 강렬하거나 엄청나진 않아도 기분 좋은 풍경을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됐어요.
님의 동네에 친구가 놀러온다면, 함께 찬찬히 걷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